다윗의 장막과 열방부흥축제

2009 6월.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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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윗의 장막 – 마지막 시대 이루어질 예배의 모형

이사야서 43:21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이유에 대하여 나온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창조한 까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계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이것이 우리를 지으신 이유이다. 제사 받으시고, 예배 받으시는 하나님, 이것이 우리를 지으신 이유인데,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일으키기 원하시는 예배의 모형이 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의 장막이다.


2. 다윗의 장막에 대한 예언을 통하여 이방 선교로의 문이 열렸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행 15:16-18)


지금 이 본문은 예수님의 친동생이면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오늘날의 말로 하면, 담임목회를 하고 있는 야고보의 말이다. 이 당시 상황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말은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 바로 이전에 어떤 문제가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다. 즉, 이방인의 할례 받는 문제로 인하여 구원에 대해 논쟁이 일어났고, 이에 대해 베드로가 이야기 하고, 바울과 바나바가 간증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한다.


이때 야고보가 일어나서 아모스 9장 11절(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말씀을 인용하여 이 논쟁을 일단락 짓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서 이방으로의 구원의 문이 열린 것이기에,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는 우리민족에게 있어서도, 또한 모든 민족에게도 크나 큰 의미를 갖는다.


야고보의 이야기는 이것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짓겠다고 하시지 않았느냐, 그리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오고, 모든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리라 하지 않으셨느냐. 즉, 다윗의 장막이 회복되면 <대추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부르짖는 부흥, 말이다. 그러나 이 부흥은 마지막, 부흥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번에 웨일즈에 간다는 의미는 마지막 부흥을 보겠습니다!라는 고백인 것이다. 최근에 홍콩에서 Call to All 이라는 모든 각국 선교단체/교회 리더들의 집회에서 CCC총재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이 지구에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민족은 619개라고(참조:http://call2all.org) 다윗의 장막에 대한 계시가 이 시대에 풀리고 있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3. 다윗의 장막에서 이루어진 예배 – 예언적 예배

예수께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라 하셨고, 자기가 3일만에 일으키겠다 하셨다. 이것은 성전되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예수께서 자기 육체로 부활하셨기에 더이상 예루살렘 성전은 그 건물자체적인 의미가 없다.


다윗의 장막은 무엇인가?

역대상 25:1-7 다윗의 장막에서 드려진 예배를 보면 288명의 예배인도자가 있었고, 다윗은 12명씩 1그룹으로 묶어 24개 팀을 만들었다. 역대상 23장을 보면, 연주자가 4,000명이었고, 싱어만 3만 8,000명이었다. 24시간 365일 내내 36년간 쉬지 않고 이 곳에서 예배가 드려졌다. 또한 다윗은 이 곳에서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여기에서 신령한 노래는 “나바”라는 단어로써, 그 의미는 ‘prophesy’ 예언하다이다. 다윗의 장막에서는 예언적인 찬양을 쏟아놓아졌고, 함께 연주하며 노래했던 것이다.


이것이 시편에 잘 수록되어 있다. 즉, 예수님에 대한, 종말에 대한 수많은 찬양들이 지어졌던 것이다.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하여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요엘 2:28-30). 예언적 예배가 일어날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4.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드리는 예배

다윗의 장막과 모세의 장막은 근본적으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다윗의 시대에, 제단과 성소는 기브온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법궤, 즉 지성소는 기브온에 있지 않았고 다윗의 장막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다윗의 장막은 제물을 바치는 제단이 없었다. 다윗은 이 두개를 분리시킨 것이다. 모세의 장막의 예배는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구원을 위한 예배였으며, 오로지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 있어서 대리자를 요하는, 그러한 예배였다면, 다윗의 장막의 예배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예배가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었다.


다윗의 장막에 법궤가 들어오기 전에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벳세메스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 본 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5만이 죽임을 당했고, 또한 웃사의 사건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웃사가 하나님의 법궤를 만졌을 때, 그를 치셨다. 이 사건을 경험한 다윗의 장막의 예배자들은 법궤를 마주하며 드리는 예배에서 그냥 평범한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목숨을 바쳐 드리는 예배였고, 거룩하지 않으면 설 수 없는 그러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과 영광을 구하는 그러한 예배를 드린 것이다.


5. 만민을 위한, 만민이 기도하는 기도의 집

또한 다윗의 장막의 본질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전에 대한 기본적으로 가지셨던 생각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셨다(사56:7, 막11:17). 즉, 이방인까지 와서 기도하는 집인 것이다. 역대상 17장에 다윗이 법궤가 들어온 후에 제일 처음으로 부른 찬양 또한 모든 만민, 온 민족이 주님을 찬양할 것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6. 주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는 예배

다윗의 장막은 그래서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고대하는 자들의 예언적 예배이다. 예언에 씌여진 대로, 이 마지막 시대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같이 한 가지(One thing), 를 소망하며 하나님 앞에 예배했던 다윗과 같은 예배자들을 찾으신다.


이 예배는 모든 민족이 그 장막안에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친히 자신의 육체를 찢으셔서 지성소로 나아가는 그 길을 여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 안에서 그 분의 얼굴만을 구하는 예배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연합하고 계신다. 그들을 연합하는 예배들을 일으키고 계신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민족에서 저 민족에게로 가서 함께 드리는 예배, 역사상 이러한 때가 없었다. 우리가 이스라엘에 가서 예배 드릴 때, 이스라엘 정통 유대인들이 우리에게 와서 묻는다.


너희의 노래가 무엇에 관한 것이냐고, 내 마음이 중심으로부터 뜨겁다고, 그렇게 고백하는 그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메시아닉 쥬의 숫자가 점차로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다. 이 예배가 회복되어지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돌아오고, 모든 민족이 주께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 충만한 수에 이를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다윗의 장막은 회복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장막을 회복하고 계신다. 각 나라의 다윗의 장막이 일어나는 이 때에, 우리는 한 조각 퍼즐을 맞추듯이 나아가야 한다. 이 퍼즐이 완성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볼 것이다.

 

열방부흥축 6월 기도회에서 – 정이호 목사(NLM) 메시지

(김혜진 자매 요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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